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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하나씩

고마운 나의 꽃감에게

오래전 커다란 꿈이 있었다.
[장옥정 사랑에 살다]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한복에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던 나는 언니의 자취방에서 홀로 언니를 기다리면서 상상을 했다.
출근할 때 양복을 입는 것처럼 한복도 그렇게 할 순 없을까? 붐비는 회사숲 근처, 활동에 편리하게 디자인된 한복을 입은 사람들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지금처럼 그저 가끔 특별한 날에 입는 옷으로만 남기엔 아쉬운 마음이 들었고, 그렇담 내가 해보자!로 키우기 시작한 꿈이었다.

반팔티셔츠 같은 가지고 있는 옷과 입었을 때 어색하지 않지만 한복의 매력요소가 들어있는 옷을 만들고자 했다.
누군가의 가르침을 받아볼까 했지만, 잘 되지 않았고 혼자서 책이나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독학했다.
위 사진도 그런 시행착오 중에 만들었던 옷들 중 하나이다.
꽃으로 지은 옷감, 꽃감이라는 이름도 있었고 비교적 간단한 것들을 만들어 판매하기도 했다.

스승도 친구도 없이 홀로 작업실에서 배우고 실력을 쌓아간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 도시에서 대학생활을 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더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다른 내 또래들처럼 같은 학문의 지식을 쌓고자 하는 이들과 함께 공부하고 싶었고, 궁금증이 생겨 질문할 때 대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했던 것 같다.
또래는커녕 지나가는 사람도 잘 보이지 않는 시골의 춥고 넓은 작업실에서 꿈에 대한 열정은 점점 사그라들다 불씨가 꺼졌다.
그렇게 작업실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미싱부터 시작해 모든 물건을 급처로 다 처분해 버렸다. 적정 가격에 한참 모자랐지만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시간이 흘러 엄마가 짐정리하다 발견했다며 내가 만든 옷을 보내주셨다.
받아보고는 한참을 보관했던 것 같다. 입지도 않을 거고 그렇다 해서 추억을 보관하는 성격도 아닌데, 버릴 마음에 옷을 집어 들어 부드러운 원단을 만지고 나면 이상하게 버릴 수가 없었다.
힘들게 끙끙대며 전통매듭을 만들어냈던 그때가 생각이 나서 마음이 미어졌다.
단추는 꼭 전통매듭으로 하고 말겠다는 다짐으로 여기저기 도서관에 들려 책을 찾아내고, 땀에 젖어 미끄러지니 더 힘을 줘 빨개진 손으로 겨우 완성하고는 성취감을 느끼던 그때가 말이다.

이루지 못한 꿈을 되돌아보며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좀 더 우직하게 참고 견디지 않았으니까, 해내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사실 글을 쓰기도 조금 어려웠다.
잊고 싶은 과거를 다시 끌어오는 것 같고, 도망친 나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쓸 수 있을지 모르겠고, 부끄러운 마음에 또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할 것 같았다.

이젠 그런 무거운 마음이 들지 않는다.
감정을 솔직하게 마주하고 나니 옷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감이 온다.
그 또한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소중한 시간이었고, 그때 쌓아온 노력으로 또 다른 멋진 일을 더 잘 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든다.

이대로 만든 옷을 처분하듯 버리기엔 마음이 불편해서 쓰기 시작했는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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